"형사판결서 간결화 예규" (출처 - 서울지방변호사회 內 법률신문사 기사)

작성자
visionall
작성일
2014-07-16 15:44
조회
10213
"심증 형성·당사자 설득은 판결문 아닌 법정심리로"


법원이 다음 달 1일 ‘형사판결서 작성방식 적정화에 관한 예규’를 시행해 형사법관들에게 판결문을 짧고 쉽게 쓰게 한 데에는 ‘형사재판에서 심증 형성과 당사자에 대한

설득은 판결문이 아닌 법정에서의 심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법원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판사들이 장문의 판결문

작성에 소요하는 시간과 업무의 부담을 줄여 공판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형사판결문은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그대로 적고 항목별로

검찰과 변호인의 주장을 각각 나열한 뒤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했는지 모두 쓰고 있다. 이 결과 지난 2월 징역 4년의 유죄판결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1심 판결문은

480쪽,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판결문은 470쪽이 넘었다. 지난해 11월 법원행정처가 전국 형사법관 3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판결문 작성업무 비중이 전체 업무의 40%가 넘는다고 답한 법관이 67.5%에 달했다. 판결문 간소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법관은 97.4%나 됐다.

새 예규 시행을 앞두고 법원 내부에서는 “그동안 판사들이 판결문 작성 업무와 관련해 느낀 고민과 생각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검찰과 변호사 업계에서는

“판사 업무량 경감을 위해 판결문 분량을 줄이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무죄 이유 장황하지 않고 핵심부분 위주 간략하게

판결문 분량 적정화… 공판에 더 집중 할 여건 조성

법원 내부는 대체로 긍정적… 검찰은 우려의 목소리


◇형사판결문, 어떻게 간소화되나= 새 예규는 유무죄의 이유를 장황하게 쓰지 않고 핵심 부분을 위주로 간략하게 판결문을 작성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죄 판결을 할 때

공소사실이 전부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별지로 첨부해 범죄사실 기재를 대신할 수 있게 했다. 증거 요지 작성은 △증거에 관한 다툼이 주된 쟁점인 경우 그 판단을 증거의

요지와 함께 기재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때에는 해당 증거의 표목 옆에 판단을 부기하거나, 증거의 요지 하단 부분에 판단을 기재하고, 별도의 항목으로 소송관계인의 주장

및 판단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며 △증명력에 대한 다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판단을 기재하지 않도록 했다.

법령의 적용 시에는 △법령 적용에 대한 다툼이 재판의 주된 쟁점이고 그에 대한 판단을 기재할 필요가 있을 때 그 판단을 법령의 적용과 함께 기재할 수 있되 △이때에는

해당 적용법조 옆에 판단을 부기하거나 법령의 적용 하단 부분에 판단을 기재하며 별도의 항목으로 소송관계인의 주장 및 판단을 기재하지 않도록 했다. 사실상의 주장에

대한 판단과 관련해서는 형사소송법 제323조에서 정한 사항 이외에 소송관계인의 사실상의 주장에 대한 판단은 별도로 기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쟁점에 대해 판단을 기재할 때는 △판단이 필요한 쟁점과 관련된 구체적인 제목을 붙여 쟁점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그밖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기재하거나 추론의 모든 단계에 대한 판단을 전부 기재하지는 않도록 하고 △판단을 기재하면서 증거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거나

증거의 취사선택의 이유 및 심증형성의 과정을 설명하지 않도록 하고 △범죄사실과 증거의 요지에 기재된 내용과 단순히 반대되는 주장에 대해서는 판단을 다시 기재하지

않도록 했다. 무죄판결을 쓸 때에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핵심적 증거는 그 표목과 취지를 소개한 후 배척에 필요한 반대증거나 정황의 주된 취지만 간략하게 기재하는

방식으로 배척 이유를 적고 △부수적인 유죄 증거의 배척이유, 당사자의 진술 변동과정, 신빙성을 배척하기 위한 탄핵증거의 채택이유 등은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공동피고인 중 일부에 대해서만 증거능력 있는 증거는 증거능력을 배척하는 이유를 간결하게 적도록 규정하고 있다.

◇판사들, 대체적으로 “바람직한 방향”= 이번 예규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판결문이 지금처럼 길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법원 내부에서 경쟁적으로 필요 이상의 긴 판결문을 쓰게 되면서 전체 판사들의 업무량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면서

“하지만 자세하고 긴 판결문이 과연 잘 쓴 판결문인가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판결문 분량을 적정화함으로써 공판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예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 공감한다”고 평가했다. 서울의 다른 부장판사는 “거의 매일 공판을 진행하면서 몇십쪽, 몇백쪽이나 되는 판결문을 작성하기가

쉽지는 않다”며 “소송관계인에 대한 설득은 법정에서 이뤄져야 하고, 판결문은 피고인이나 검사가 궁금해 하는 사항만 짚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죄의 경우에도 상급심 재판부를 설득해야 할 주체는 검사지, 1심 재판부의 판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많다”며 “무죄판결을 장황하게 쓰는 것은 피고인에게

자칫 ‘재판부가 검사를 설득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이번 예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며 “1심 판결문이 자세히 쓰여져 있어야 상급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심 판결문이 너무 자세히 쓰여져 있으면 판결문의 문장 하나를 놓고서도 불필요한 법적 공방이 벌어지기도 하고 항소심에서 판결이 깨질 여지도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법원 설문조사에서 전국 형사법관들은 판결문 적정화를 위해 시급히 해결할 사항(복수응답)으로 ‘판결서 분량이 적어질 경우 불성실한 것으로 비춰진다는

인식의 변화’(247건), ‘상급심에 대한 보고적 기능에 있어 지나친 부담감 버리기’(229건), ‘판결문을 근거로 하급심 판사를 평가하는 상급심 판사의 인식 변화’(227건)를 꼽았다.

반면 새 예규가 시행돼도 판결 간이화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지난해 중앙지법에서 판결문 간소화 방침을 마련했지만

사실상 큰 변화는 없었다”면서 “대법원 차원에서 예규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각 재판부가 실제로 얼마나 반영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판결문 간소화와 공판중심주의 강화는 별개”= 반면 검찰과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판결문은 완결성이 담보가 돼야

하는데, 범죄사실 기재 대신 공소사실을 별지에 첨부하도록 하면 흐름이 깨질 수 있다”며 “또 애초에 기재된 공소사실이 유지되지 않고 공소장이 변경된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판결문은 재판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판사의 고유업무”라며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위해서는 판결문을 간이화할

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의 업무 효율을 도모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엄밀히 말하자면 판사들의 업무 경감 문제는 법원 내부의 사정”

이라며 “판결문을 쉬운 말로 써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업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판결문 분량을 줄이겠다는 취지라면 사건 당사자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출처: 법률신문사 장혜진 기자 core@lawtime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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